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윈체스터 M1897 (문단 편집) == 트렌치 건 (Trench Gun)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viWAUjkz9UY)]}}} || ||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유명했던 산탄총이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으로 파병된 미 육군, 해병대원들의 손에 들려 사용됨으로서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 트렌치 건하면 보통 M1897이나 M1912가 떠오를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미군은 전쟁 3년 동안의 조사를 검토한 끝에, 짧은 거리에서 교전이 일어났던 [[참호전]]에서 근거리로 막강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산탄총이 지목되면서 군의 요구에 따라 20인치 길이의 총열 위에 방열판을 추가하고 M1917 총검을 부착할 수 있도록 개량된, ''''트렌치 건' (Trench Gun)'''이 등장하였고, 다른 트렌치 건형 산탄총이나 반자동 산탄총인 [[Auto-5]], [[스프링필드 M1903]]의 소구경탄 사용 노리쇠인 [[페더슨 장비]]와 함께 기습이나 [[시가전]], 일부 특수 작전, 전쟁 포로 관리, 기지 방어용으로 사용되는 등 미군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M1897은 슬램파이어[* 방아쇠를 누른 상태에서 장전하면 바로 발사된다] 기능 덕분에 빠른 속사능력을 자랑했고 심지어는 '''아군 참호로 날아오는 독일군의 수류탄을 맞혀 공중 폭파해 격파'''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원래 사냥용으로도 사용되는 산탄총 특성상 탄만 맞으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걸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전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8발들이 벅샷으로 주먹만한 쇳덩이이를 맞춘다는 것은 정말 어지간히 어렵다. 슬램파이어의 상당한 속사능력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 단발 사격만으로 1차 대전의 막대형 수류탄을 격추하는 영상. 처음에는 자주 놓쳤지만, 익숙해지면서 성공률이 높아지는데 슬램파이어로 연발로 했다면 이보다 더 격추하기 쉬웠을 것이다.[[https://youtu.be/2t_RW1z7pUs?t=114|#]]] 한편, 독일군은 미군의 산탄총 사용을 무척이나 불쾌해했다. 이는 당시 산탄총에 대한 유럽인들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으로, 독일을 포함한 당시 유럽인들은 산탄총을 동물 잡는 용도로만 쓰는 '사냥총' 으로 여기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 속 살인마들이 [[전기톱]]이나 도축칼로 살인하는 것을 더욱 공포스러워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데, 짐승들이나 잡는 도축용 도구로 나와 내 전우들을 '''썰어버린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정작 푸줏칼이나 도축용 송곳, 도축용 뼈톱 등은 독일군이 반드시 격파해야 할 숙적으로 여긴 프랑스군에서 버젓히 근접무기로 썼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만[* 프랑스군은 보불전쟁의 뿌리 깊은 원한으로 옳고 그르고 따질 정신이 없었다. 가령 프랑스식 참호는 빠르게 설치해 다음 공격까지 총포탄 피하는 기능만을 고려한 단순한 형태였기에, 각 맞추고 철제 슬레이트로 보강하고 배수로 파고 이런저런 용도의 개별 공간까지 마련한 요새 형태의 독일식이나 나무 판자나 통조림/레이션 캔, 모래주머니, 함석판 등으로 보강한 영연방/미국식보다 방어력과 거주성 모두 한참 열악했으며 그냥 길쭉한 거대한 구덩이나 다름없던 제정 러시아식보다 간신히 나은 수준이었다. 다만 이는 1915년에 한정된 것으로 전쟁이 길고 지루해지고, 서로의 참호를 뺏고 빼앗기면서 참호 파는 방식은 수렴진화하게 된다. 거기에 동부전선은 참호 파기에는 너무 넓어서 대충 지은 점도 있다.] 안그래도 머나먼 식민 개척지 출신의 미개인, 촌놈들이라는 시각이 존재했는데 산탄총으로 인해 미군에 대한 독일군의 인식은 더욱 나빠졌다. 어쨌든 독일이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비인도적 무기라며 외교적으로 항의하자 각국은 산탄총에 대해 다르게 해석하였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랜싱은 조심스레 관련 법률들을 검토하여 독일의 항의를 거부하였다. 당시 미군들은 '''"[[내로남불|독가스나 비겁하게 뿌리고 화염방사기로 사람 불태워 죽이는 너희 훈족놈들이 그딴 개소리 씨부릴 처지가 되냐?]]"[* 1899년 헤이그 육전 조약에 따라 포탄에 독가스를 실어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독일은 드럼통에 독가스를 넣고 풍향에 맞춰 연소시키는 방식으로 살포하였고, 협상국도 독가스를 사용하자 얼마 안 가서는 다시 독가스가 담긴 가스드럼을 포탄으로 쏘게 되었다. 살상용 독가스를 편법으로 사용했으니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저렇게 반응할 만하다.]'''라는 반응 이었다고... 이에 열받은 독일군은 [[저격수#보복|산탄총 사수를 포로로 취급하지 않고 즉결 처분을 내릴 정도]][* 그러나 미국도 이에 대해서 반발하였고 '산탄총 사수를 즉결 처분할시 보복함'을 독일 외교부에 공식 문서로 전달하였고, 당시 유럽 전선 총사령관이었던 [[존 퍼싱]] 장군도 보복 조치로 화염방사기 사수와 기관단총 사수를 즉결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실제 즉결 처형 사례는 없었다.]로 악랄한 무기로 취급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산탄총을 사용하기는 하였는데 대체로 민간에서 사용되었던 사냥용 [[더블 배럴 샷건|쌍총신 엽총]]을 징발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